날조의 공간
[송강/조각] 아득하다 본문
하늘은 어둠에 휘감겼다. 칠흑같은 어둠은 하늘을 삼키고, 별을 삼키고, 달을 삼켰다. 반짝이고 뜨거운 것들을 잔뜩 삼킨 어둠은 그 대가로 울음을 토해냈다. 쏟아지는 어둠의 울음 속에 그는 가만히 서 있었다. 하늘의 울음에 자신의 울음을 섞은 채 그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어둠은 탐욕스러워 모든 것을 집어 삼켰지만 그의 울음은, 눈물은, 서러움은 삼키지 못했다. 그의 주위로 잔뜩 산적한 감정들이 뭉쳐 있었다. 잔재한 감정에 파묻힐 듯 당신은 그렇게 약해져 있었다. 언제나 드넓은 어깨만 남아있던 기억 속에 익숙하지 않은 연약한 뒷모습이었다.
“…감기 걸려요.”
울음을 꾸역꾸역 삼키던 당신에게 다가섰다. 커다란 장우산이 당신의 머리 위를 덮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 한 방울 안 적셔진 곳이 없었다. 특히 그의 눈가는 이미 잔뜩 짓물러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의 뺨의 감싸 쥐고는 엄지로 눈가를 쓸었다. 따끔한 듯 눈을 찡그린 그는 이내 나를 올려다보았다. 멍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던 당신은 이내 나를 밀어냈다. 그는 스스로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로 다시 섰다. 장대처럼 쏟아지는 빗물 아래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인 듯 그렇게 그는 하염없이 빗속에 서있었다. 내가 올려다보던 당신은 이제 내가 내려다 봐야 했다. 나는 우산 아래서 그렇게 당신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 해요. 끝났잖아.”
나는 겨우 입을 달싹였다. 텅 비어버린 당신의 두 눈을 마주치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겨우 쥐어짜낸 것이었다. 빗소리에 파묻혀 그에게 닿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곁에 잔재한 감정들은 그를 조종했다. 그는 이미 미련에게 사로잡힌 인형이었다. 미련이 원하는 대로 그리워하고, 애타게 원하고, 사랑이라는 가면을 뒤집어 쓴 집착을 하는. 나는 그런 당신을 볼 수 없었다. 다시 당신에게 다가섰다. 잔뜩 젖은 당신을 품에 끌어안았다. 내 옷이 젖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놓지 않았다. 당신에게 잔뜩 들러붙은 감정의 실을 떨쳐내려는 듯 토닥였다.
“그 사람, 이제 놔요. 그리고…….”
나를 봐줘요.
품 안에 기절한 듯 정신을 잃은 당신을 세게 끌어안고 속삭였다. 이미 정신을 잃은 당신에게 닿지 않을 말이었다. 허나 그것은 다짐이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 겨우 깨달은 감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내뱉은 이상 더욱 크기를 키워갈 것이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다. 커진 이 감정으로 당신의 몸을 덮은 미련을 다 삼킬 것이다. 오로지 내 감정만이 당신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그렇게. 당신은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힘을 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당신의 몫까지 당신을 사랑할 것이므로.
그렇기에 나는 이 감정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
그 사람은 그랬다. 항상 미련하게 굴었다. 손을 뻗어 잡을 생각은 않고 항상 바라만 보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면서도 그는 남의 손에 넘어가도록 방관하고 있었다. 그를 향해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지만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도 아파보여서 나는 한 동안 그의 미소를 잊지 못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아마, 내가 그를 마음에 담게 된 것은.
그는 항상 나를 아이 취급했다. 귀여운 이웃 동생, 어릴 적부터 봐온.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의 웃는 얼굴이, 나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그저 좋았다. 그것이 미묘한 마음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있어서였다. 흔히들 하는 사내의 몽정에서 내가 본 것은 나신의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라 그 사람이었으므로. 꿈을 꾼 날, 당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든 마음은 죄책감, 그리고 욕심이었다.
그 꿈에서 본 얼굴을 실제로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치밀어 오른 기이한 감정에 입을 틀어막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대로 화장실로 뛰어들어 점심으로 먹을 것을 다 토해내고 나서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고의적으로 그를 피했다. 간간히 문자를 하면서도 그와 마주치는 일을 만들지는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고는 더욱이 피했다. 간간히 내 꿈에 나타나는 그를 발작하듯 탐했다. 잔뜩 굶주린 맹수가 먹이를 물고 뜯듯 나는 그를 탐했다. 그를 보지못해 그리워한만큼, 애닳아한만큼 그를 탐하고, 또 탐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면 죄책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꿈에서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던 당신의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전해듣기로 그는 또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뺏겼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을 인정할 수 없었고 당신이 누군가를 마음에 품기 시작한 것을 애써 축하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발버둥이었다. 그 발버둥은 머지않아 멈출 것이고 나는 다시금 저 늪 아래, 추악한 감정의 나락으로 가라앉을 것이었다. 알고있음에도, 나는 발버둥을 멈추지 않았다.
중학생일 때 마주했던 당신은 나보다 컸고, 훨씬 어른과 같았다. 그렇게 가능하면 마주치는 것을 피하고, 피하고, 또 피하고. 그와 다시 마주친 것은 내가 대학생이 된 후였다. 군대를 다녀온 후, 복학했다가 다시 복학한다며 나를 바라보며 환히 웃는 당신을 마주하자 나는 깨달았다.
나는 그를 벗어날 수가 없다고, 발버둥은 그저 그를 향한 구애의 몸짓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을.
그와 함께 자취를 하게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전보다 얌전해진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나는 그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향한 마음이 언제 터질까, 나는 그것이 무서웠다. 전전긍긍하며 그를 가능하면 피하고 피했다. 혹여나 술김에 이 마음을 터뜨릴까 걱정이 되어 술자리도 피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그는 신기해할 따름이었다. 이곳 저곳에 산재한 마음이, 온 몸을 내리누르는 고통이 언제쯤 흩어질까. 부질없는 고민만 커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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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하는 5살 연하 송 X 이웃사촌 형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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